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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1948~1964)
- 1948. 8. 26대구시 중구 삼덕동 149번지에서 아버지 전상수, 어머니 이소선 2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
- 1951. 3한국전쟁 중 대구를 떠나 부산에 정착, 아버지는 소규모 의류 제조업을 시작
- 1954. 8아버지의 의류 사업 부도로 온 가족은 서울로 상경, 서울역 근처 남대문시장에서 조그만 공장을 시작
- 1955. 3‘남대문초등학교’ 입학
- 1960. 3아버지 사업 부도로 ‘남대문초등학교’ 5학년 중퇴 후 가족 생계를 위해 신문팔이, 우산 장사, 삼발이 장사 등을 전전
- 1961. 3서울 ‘동광초등공민학교’ 6학년에 편입학하였지만 6개월 만에 자퇴
- 1962. 1온 가족이 대구로 돌아가 태일은 아버지 봉제일을 도움
- 1963. 3대구 ‘청옥고등공민학교(중학과정)’ 야간학교를 다니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지만 아버지 일을 돕기 위해 학교 중퇴
- 1964. 2서울로 돈을 벌러 떠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6살의 막내 순덕(태리)만 데리고 무작정 상경
노동운동가의 삶 (1965~1970)

- 1965. 8서울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은 다시 모여 남산동 무허가 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함, 평화시장 삼일사에 견습공(시다)으로 취직하여 첫 소년공 생활을 시작
- 1966. 2남상사를 거쳐 통일사에 미싱사로 취직 후 참혹한 노동 현실을 목격, 이를 개선하고자 재단사가 되기로 결심
- 1966. 10재단보조로 한미사에 취직하여 재단사로 승진, 굶주리며 16시간씩 일하는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작업을 대신 해주며 고통 분담
- 1967. 6고입 검정고시 준비 중 아버지를 통해 근로기준법을 알게 되고, 어린 여공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이 시급하다고 판단하여 갈망하던 공부 포기
- 1968. 6재단사들의 모임인 바보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맡고, 회원들과 노동법을 공부하며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시청과 노동청에 진정하였으나 좌절
- 1969. 9공장에서 해고되고 바보회 활동 중단
- 1969. 11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십대 소녀들의 하루 16시간 노동 현실 진정서) 작성
- 1969. 12근로감독관에게 보내는 편지(참혹한 노동 환경 고발장) 작성
- 1970. 1태일피복모범업체 설립 계획서 작성과 설립 자금을 위해 중앙일보 사회면 '주사위'란에 안구 기증자를 찾는다는 편지 발송
- 1970. 4임마누엘수도원 건축공사장에서 막노동하며 죽음을 각오한 번민과 결단
- 1970. 8임마누엘수도원 하산과 삼동친목회 조직, 실태조사서를 작성하여 동양방송 고발프로·시청·노동청 진정 등 투쟁의 시작
- 1970. 10경향신문 석간 사회면에 평화시장 실태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 보도와 사장 면담 투쟁, 노동청 진정과 시위 투쟁
- 1970. 11. 13전태일 분신항거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치르기로 한 날 집회, 시위가 경찰에 의해 막힘 - 1970. 11. 18마석 모란공원에 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