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전태일 열사가 굴린 덩이, 이제야 그 뜻을 알겠다
- 관리자
- 2025.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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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가 굴린 덩이, 이제야 그 뜻을 알겠다 전태일기념관 홍보 담당자가 되어 쓰는 글... 함께 굴리는 마음으로, 이곳에 있습니다 박수정(aurum) 전태일기념관 1층에는 커다란 덩이를 굴리는 전태일의 조형물이 있습니다. 두 손으로 무언가를 밀고 있는 청년의 모습은 시간을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합니다. "이 덩이, 함께 굴려줄래?" 처음부터 이 덩이가 제게 의미 있었던 건 아닙니다. 지난 4월, 전태일기념관에 처음 출근했을 당시, 이 조형물은 아직 조성 중이었습니다. 전태일을 아는 누구나 그러하듯 저 또한 '전태일' 하면 떠오르는 상징은 '풀빵'이었습니다. 평화시장 여공들에게 사다 주었던 따뜻한 풀빵은 그의 마음과 연민, 그리고 행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기념관에서 일을 하며, 그의 유서와 수기를 수차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주 등장하는 한 단어, 바로 '덩이'에 시선이 머물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던 이 표현이, 점차 전태일이 짊어졌던 삶의 무게처럼 느껴졌습니다. '덩이'는 단지 무겁고 둥근 돌덩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태일이 짊어졌던 시대의 부조리였고, 누군가는 반드시 굴려야 했던 사회적 책임이자,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풀빵에서 덩이로, 나의 시선이 바뀌다 대학 시절, 한국 사회의 노동운동과 그 물줄기를 바꿔놓은 전태일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계기로 저는 단지 '관심'을 가지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이후 사회운동에도 발을 디뎠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전태일이 오고 갔을 청계천 가까이, 그의 이름을 딴 기념관의 홍보담당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획된 전시와 각종 노동인권 교육 프로그램을 알리고, 그의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전하는 일이 이제 저의 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이 일 역시, 덩이를 함께 굴리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 덩이는 너무 무거워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함께라면 굴릴 수 있습니다. 태일이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너희가 굴려줘."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기념관을 찾아옵니다. 덩이를 보고 멈춰 서고, 자신이 굴려야 할 덩이에 대해 생각합니다. 저는 그 여정을 조금 더 가깝게 만들어주는 안내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덩이'를 더 많은 이들과 함께 굴리기 위해 우리가 먼저 길 위로 나서고 있습니다. 5톤 윙카를 활용한 이동형 노동인권 전시관 <달려라! 노동인권체험관>은 초중고 학생들을 찾아가 전태일의 삶과 정신을 전하고, 직접 느끼고 표현하는 체험 교육을 진행합니다. 아이들은 하얀 덩이 도안 위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작고 다채로운 덩이 하나씩을 완성해냅니다. 전태일이 굴렸던 덩이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말합니다. "내가 굴리는 덩이는 엄마가 쉴 수 있는 세상이요", "내 덩이는 다치지 않는 일터예요", "저는 모두가 행복하게 일하는 덩이를 밀고 있어요", 아이들의 말 한 마디, 그림 한 장 속에 또 다른 전태일의 덩이가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함께 굴리는 마음으로 나는 지금, 덩이를 굴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와 그 덩이를 함께 굴리기 위해, 이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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