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
“아무 걱정 마라. 내 목숨이 붙어있는 한 기어코 내가 너의 뜻을 이룰게.”

전태일은 숨을 거두기 전, 어머니 이소선에게 마지막 부탁을 남겼다.
이소선 어머니는 아들의 뜻을 꼭 이루겠노라 약속하였고, 이는 어머니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전태일의 사망 이후 이소선 어머니는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정부 당국의 갖은 협박과 회유 속에서 평화시장의 “청계피복노동조합”을 결성시킨 것이 그 첫 번째 결과물이었다.

이소선 어머니는 이 조합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호칭도 얻었다.
노동운동 현장을 이끄는 것은 물론, 처지가 어려운 조합원들에게 자택을 내주어 숙식을 해결하게 하거나,
또, 노조의 요구로 설치된 서울시의 <후생식당>이 ‘끼니를 굶는 노동자와 저소득층을 위한다’는 취지에 걸맞지 않게 운영되자, 직접 직원으로 일하며 급식의 질을 챙기는 등 노동자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이소선 어머니는 청계노조에서 그 영역을 확장하여 노조 간 연대활동, 학생ㆍ재야운동에까지 손길을 뻗쳤다.
또,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투쟁 현장에 가서 직접 지도하고 격려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소선 어머니는 250여 차례가 넘는 구속과 180여 번의 구류처분, 총 3년여의 옥살이를 당했으며,
이렇게 총 41년의 세월을 노동자와 함께 보내다 2011년에 별세하였다.

이소선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