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소장품] 2025.7 서울노동운동연합 결성, 대중적 노동운동 세력으로 나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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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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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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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기념관 프로젝트 전시 <이달의 소장품> 전태일기념관의 <이달의 소장품>은 기념관 자료를 통해 노동 역사를 재조명하여 노동권 보장을 위해 행해졌던 다양한 노력을 되짚고 노동권 보호의 필요성을 알리는 프로젝트 전시입니다. 7월. 서울노동운동연합 결성, 대중적 노동운동 세력으로 나아가다. 1985년 6월 구로동맹파업을 계기로,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동운동을 넘어선 대중적 정치투쟁 조직의 필요성이 확산됐다. 이에 따라 같은 해 8월 25일, 노동자 대중 정치 조직인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이 결성됐다. 서노련은 청계피복노조, 서울노동자연대투쟁연합, 노동운동탄압저지투쟁위원회, 구로지역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등 4개 단체가 1985년 결성한 연합조직이다. 서노련은 노동자의 대중 정치 참여와 사회 변화를 지향한 실천적 노동운동을 전개했다. 1985년 10월 인천지역노동자협의회, 기독교노동자총연맹, 안양지역노동3권쟁취위원회와 함께 전국노동자삼민헌법쟁취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학생운동 세력과 연대해 노동자 주도의 개헌투쟁에 나섰다. 1986년 5월 3일 인천 신민당 개헌 현판식 집회를 계기로 적극적인 선전‧선동 활동을 펼쳤다. 서노련은 1985년 11월 18일 생활임금쟁취위원회를 구성하고, 8시간 노동에 생계 가능한 임금 확보를 목표로 생활임금쟁취투쟁을 전개했다. 1986년 봄에는 구로공단, 부천, 창원 등에서 임금투쟁의 목표로 제기되었고, 집회와 가두시위 등 선도투쟁 방식으로도 전개됐다. 서노련은 5·3인천항쟁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돼 1986년 5월 15일 핵심 활동가 10여 명이 구속되는 등 강도 높은 탄압을 받았다. 구속자들에게는 국가보안법, 집시법, 소요죄 등이 적용되었다. 핵심 활동가들이 대거 구속된 상태에서도 전국적 노동자 조직 건설을 추진하는 등 활동을 계속했지만, 내외부 노선 갈등과 비판 속에 1986년 말 사실상 해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