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기념관 연속기획《물어보는 노동 2: 이찬주》

  • 진행 기간 : 2022-08-26 ~ 2022-10-10
  • 진행 장소 :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3층 특별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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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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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관장 오동진)은 2022년 전태일기념관 노동복지기획전 연속기획 《물어보는 노동 2: 이찬주》를 개최합니다.
전태일기념관 3층 특별전시장에서 진행되는 연속기획 《물어보는 노동 2: 이찬주》는 ‘노동’이라는 말에 담긴 사회적 인식을 시각예술을 통해 뒤집어보는 시도입니다. 노동과 인간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이어온 여러 시각예술가를 초청하고, 작품을 매개로 노동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이를 통해 1970년 전태일의 인간 선언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잇는 2022년의 새로운 인간 선언에 대해 생각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연속 기획 두 번째 초대작가는 시각예술가 이찬주입니다. 이찬주는 예술과 노동이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두 인간 활동을 건축 노동과 겹쳐 봄으로써 다르게 보기를 시도해 온 작가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빌딩〉 연작, 〈우리집 시리즈〉 등 건축 현장의 기술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구성한 설치미술 작품부터 노동 현장에서 떠오른 생각을 화폭에 옮긴 드로잉까지 다채롭고 풍요롭게 펼쳐 보입니다.

물어보는 노동

‘노동은 힘든 것이다. 노동은 천박한 것이다. 노동은 거칠다.’ ‘노동’이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인간이지요.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는 일에 따라서 우리를 노동자와 비노동자로 손쉽게 갈라놓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 중에서 ‘노동’이 아닌 것이 있을까요. 예전에는 상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노동자라고 불렀다면, 이제는 인간의 마음과 품이 들어가는 모든 분야의 활동이 ‘노동’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자기 가족을 위해 대가 없이 일하는 가사노동이나,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직이 직무 수행을 위하여 자신의 감정을 소모하는 감정노동까지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노동의 가치를 단순히 임금을 받기 위한 활동으로 한정 지어서는 지금 우리의 노동을 더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1970년 전태일이 외쳤던 인간 선언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였습니다. 2022년의 인간 선언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이를 위해 우리는 '노동'이라는 단어에 담겨있는 여러 사회적 인식을 뒤집어 보아야 합니다. 오직 생존을 위해 돈을 버는 것만이 ‘노동’이라는 생각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는 일에 포함된 성취감과 만족감을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 활동을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자'상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노동’이 지닌 가치를 다시 그려보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노동자’라는 말 뒤에 가려진 사람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연속 기획-물어보는 노동〉은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시각 예술계에서 ‘노동’ 혹은 우리의 ‘삶’을 주제로 꾸준히 창작활동을 이어 나가는 예술노동자에게 노동과 사람에 관해 묻습니다. 전태일기념관에서 ‘노동’에 담긴 사회적 인식을 시각예술을 통해 뒤집어 보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합니다. 예술노동자의 사유를 살피고 작품을 감상하면서, 모두가 매일 마주하는 우리의 ‘노동’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는 일은 서로 달라도, 우리는 모두 노동자임을…….

이찬주 작품 소개

‘물어보는 노동’ 두 번째 전시에는 시각예술가 이찬주의 설치작품과 드로잉 총 19점을 전시합니다. 노가다라고 불리는 건축 현장의 노동 기술은 종종 폄하되거나 멸시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건설 현장에서 쓰이는 건축 기술을 접목하여 구조물을 만드는 이찬주는, 멸시받는 노동 기술로 만들어진 작품이 전시장에서 예술 작품으로 추앙받는 모습에 주목했습니다.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 두 노동을 두고 사람들은 180도 다른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작가는 예술과 노동이라는 짐짓 상반되어 보이는 두 인간 활동을 작품에 녹여 내어 우리 인식 속의 노동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이찬주는 실제 공사 현장에 작품을 설치하거나, 전시장을 공사장 형태로 재현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미완의 건축물이 남겨진 공사장은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철근과 비계로 둘러싸인 건축물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상적인 도시 풍경입니다. 드러난 골조는 남루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소유로 점철된 욕망의 발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작가는 은연중에 내재한 이중성과 편견을 자유자재로 왕래하며 동시대를 기록해나가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서로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 이찬주는 여기에서부터 자신의 작업을 묵묵히 쌓아가고 있습니다. 사라지는 풍경을 아쉬워하면서 드로잉, 유화, 혹은 작은 미니어처로 시간을 기록하고 기억합니다. 그 안에는 자칫 사라질 뻔한 이야기가 살아있습니다. 작가의 손으로 섬세하게 조립된 미니어처 속에서 이제는 문 닫은 오래된 노포가 처음 문 열었을 때 사장님의 마음, 가게와 얽힌 이야기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퇴근하는 노동자를 위로하고 감싸 안는 작업입니다. 석양이 드리우는 아름다운 퇴근길은, 누군가에게는 오늘도 무사히 살아서 돌아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하루를 견뎌낸 노동자 자신을 응원하면서도,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동료 노동자를 생각하는 작업입니다.
〈옥탑 500/30〉으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빌딩〉 연작은 이찬주의 작품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작업입니다. ‘집’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기에 우리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건축 현장에서 아파트를 짓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내가 만든 공간에 들어가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자신에게 500에 30짜리 월세방 하나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던 작가는 학교 작업실에서 처음으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공사 중인 듯 미완의 형태를 띤 작은 건축구조물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우리의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집시리즈〉는 집을 열기구에 매달아 하늘에 떠올린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컨테이너나 공사용 엘리베이터 같은 임시 공간을 기반으로 색을 칠하고, 비계와 탱크 구조물을 세워 장식을 만들어 집으로 꾸민 것입니다. 땅에서는 내 집을 가질 수 없지만, 하늘에서라도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서 시작된 이 작업은,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공간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면서도 아파트로 획일화된 주거 양식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작가는 작업이 재밌다고 말합니다. 작가의 삶은 회사원이나 학생과는 조금 다르지만, 반복적인 노동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내는 과정에서 노동의 기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작게는 가로세로 30cm 정도부터 약 1제곱미터 정도 면적에, 시멘트와 같은 건축 재료를 이용하여 자신이 보고자 하는 세계를 구축해 나갑니다. 작가의 세계에는 매일의 노동을 묵묵히 이어가는 사람들을 향한 위로가 있고, 서로 다른 노동을 똑같이 대하는 존중이 있습니다.
이찬주는 자신의 작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소유, 욕망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반성해 나가고, 나아가 이상적인 자기 모습을 작품에 실천적으로 투영하고 있습니다. 나의 노동, 다른 이의 노동이 서로 다르지 않은 우리의 노동임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 보여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