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패널]재단사 전태일

  • 관리자
  • 2020.10.12
  • 조회수 751
전태일이 가장 억울하게 생각한 것은 노동자들이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14시간, 1주일 98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면서도 시다는 하루 일당으로 당시 커피값 50원을 받았고, 미싱사들의 임금도 재단사와 업주가 적당히 타협해서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혹독한 작업 시간과 환경 속에서 일하면서도 제대로 된 임금은커녕 직업병과 해고라는 두려움 속에 일하는 여공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바라보며 전태일은 불합리한 노동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재단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재단사는 임금을 결정하고, 입사와 해고까지 관리하는 업주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직업이었습니다. 전태일은 월급 7,000원을 받던 안정된 미싱사를 그만두고, 4,000원 줄어든 월급 3,000원의 재단 보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혼자 힘만으로는 약하고 어린 시다들을 돕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근본적 문제인 근무환경과 장시간, 저임금의 노동 현실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미싱사로 일하던 여공이 일을 하다 피를 토해 병원에 데려가니 폐병3기라는 진단을 받았고 결국 그 여공은 업주에게 해고를 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전태일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어린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암담한 현실을 바꿔보고자 결심하게 됩니다.